내가 유치원생일 때였다.
서울시 어드메의 주택가에 위치해있던 우리 집엔 치즈냥이가 살고 있었다. 어려서 기억이 또렷하진 않지만 키운다기보다 같이 존재한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 보면 와서 같이 놀고, 어떨 때는 안 보이던. 어쨌든 이 친구와 함께하게 된 경위까지는 잘 몰라서 나중에 엄마에게 물어보니, 밥 좀 며칠 챙겨줬더니 집에 들어와 앉아있더라고 말씀하셨다.
집에는 모래로 된 화장실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는 절대 우리 집 안에 용무를 처리하지 않았다. 정말 밥만 주고 예뻐해주기만 했던 기억이다. 일곱살이 된 어느 날 며칠째 이 친구가 보이지 않아 한참 주변을 헤매이고 다녔는데 어머니가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넌 그 친구를 발견하셔서 같이 뒷산에 가서 묻어주었다.

이런 느낌의 아이었다.
그 때만 해도 고양이는 집 근처에 왔다갔다 하는 동물이었고, 당시 표현으로 '애완동물'로써의 고양이는 극히 드물었다는 기억이다. (feat. 옛날사람)
세월이 흘러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강원도 철원이라는 추운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처음으로 정원이 넓은 집에 살게 되었던 나는 엄마를 졸라 5일장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사왔다. 여자아이였고 이름은 미나(엄마의 작명센스). 하얀 바탕에 전형적인 까망 갈색 바둑 무늬였던 귀여운 강아지였다. 그 당시 문화에 따라 미나는 묶여있지 않았고, 동네를 돌며 한 마리의 남자친구를 데려왔다. 당시 내가 읽던 동화책 주인공 이름을 따라 그 친구 이름을 '금복이'라고 짓고 둘을 키우기 시작했다(나의 작명센스). 시간이 지나 아버지는 또 서울로 전근을 가게 되었고, 시장출신 미나는 개장수에게 팔려갔다. 그 때만 해도 나는 개장수가 개를 사가서 뭘 하는지 몰랐었다. 물론 금복이는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옆집에 가서 살았을 거라는 추측 정도.
내가 살아오면서 겪어온 두 가지 경우를 보면 개는 길에도 흔히 보였지만 필요에 의해 구매를 할 수 있는 경로가 있었고, 고양이는 절대 살 일은 없는, 살 수 없는 동물이었다.
세월이 지나 고양이는 개의 위치를 넘보는 대세 동물이 되었고, 길냥이나 유기고양이를 데려다 키우는 사람들도 주변에 많이 보인다. 사회가 자신의 이익 외에도 공공선에 관련한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선진국이라고 어디서 들었는데,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되었나보다.
나의 어렸을 때 기억에 의존하자면 고양이라 함은 검은 애, 삼색이, 고등어, 치즈냥이 등 우리나라 길고양이로 대변되는 친구들로 연상이 되지만 요새는 고양이 계의 얼짱이라고 불리우는 랙돌이나, 고양이 같지 않게 코가 짧은 페르시안 등 장모종도 꽤 많이 볼 수 있다. 심지어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이런 고양이를 30~50에서 구매할 수 있는 시대이다. 크다면 큰 돈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딱히 구하기 힘든 돈은 아닌 적당한 금액. 저 가격에 예쁜 고양이라니. 구미가 당기지 않는가.

우리나라 품종묘의 효시, 페르시안
'언제까지 코숏만 바라볼래? 너도 한 번 예쁜 고양이 키워봐야지'
이런 마음에 좀 더 알아보니 같은 랙돌이 무려 120~150만원 수준까지 있더라. 너무나도 차이가 나는 가격에 나는 이 사람들을 단정지었다. '사기꾼'. 그래서 진실규명 및 정의구현을 위해 고양이 카페에 가입했는데 거기서의 대답. '원래 그 정도 해요, 랙돌은.' 심지어 경우에 따라 훨씬 더 비싼 아이도 있다고 했다.
그럼 30만원짜리 랙돌은 어떻게 나온 걸까.
품종고양이들은 품종강아지와 조금은 비슷하고, 많이 다르다.
품종고양이들의 상당수는 자연발생종이고, 이를 유지시키기 위해 몇몇 유전자에 유사성이 있는 아이들을 교배시켜 나온 케이스이다. 개의 경우 필요에 의해 선택된 몇 가지 요소를 갖춘 아이들끼리 근친교배를 시켜 점점 늑대에서 크게 변화해온 것이다. 다만 개의 경우 우리가 추적하기 힘들 정도로 옛날부터 이런 일이 일어났고, 그 때에는 당연히 동물권 개념이 크지 않았으니 지금와서 탓하기에는 좀 늦었다. 동물 수술할 때에는 마취도 안했었다고하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했겠는가.

동네에 따라 이렇게 달라졌다. Source: Official Husky Lovers
고양이는 좀 다르다. 나름 유전학이 발전한 이후에 품종 유지가 시작되었으니 개에 비해 변형 이슈는 적다. 다만 특정 품종에 대해 개와 같이 몇몇 특성을 뽑아내고자 브리딩을 한 역사 또한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유전병이 심하다는 사실이 있으면 CFA나 FIFe같은 단체에서 정식 품종으로 인정을 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품종고양이들은 일반적 인식과 달리 유전병에서 개에 비해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고기의 양을 늘이기 위해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벨지안블루라는 소. 각종 유전병으로 잘 못 걷고, 얼마 못 산다고 한다.
문제는 위에 얘기한 30만원짜리 랙돌의 경우이다. 일반적으로 제대로 된 브리더(그 수가 적긴 하지만)라면 위에 언급한 내용대로 건강하게 유지되는 계산 하에서만 고양이들을 교배시킨다. 또한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내는 브리더들(우리나라엔 없다고 간주해도 좋다)은 유전학적 계산을 철저히 한 후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그러나 30만원짜리의 경우는 좀 다르다. 30만원이라는 금액, 그러니까 그 정도만 받아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생산성, 즉 교배의 횟수와 키워내는 마릿수가 많다는 뜻이다. 많은 분들이 알다시피 이런 경우는 철창 안에 가둬놓고 번식을 시키는, 지상파 방송에서도 몇 번 다뤘던 '고양이 공장'출신인 것이다.

이런데서 고양이가 교배되고 분양된다. 행복은 커녕 건강 따위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Source: MBC
또 하나의 문제는 이런 '고양이 공장'에 해당하는 프레임을 몇몇 양심적인 '브리더'에게 덮어씌우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브리더를 통한 분양은 통계에서 잡히지 않을 정도로 적다(아래 그림 참조). 어차피 자연발생이었던 고양이의 품종 또한 멸종위기의 동물들처럼 보호받아야 한다는 전 세계적으로 꽤나 많은 수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인식과, 품종에 따른 성격과 외모를 찾는 (전 세계의 수많은) 예비 집사들의 요구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또한 알러지 등을 가져 분양을 못 받는 랜선 집사들은 알러지 유발물질이 적게 발생되는 품종을 들여 그들의 꿈인 '집사'가 될 수 있다.

고양이의 경우 브리더는 0.0% Source: KB경영연구소 반려동물 보고서(2018)
비록 품종으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몇백년간 이어져 온 코리안 쇼트헤어의 모습을 기억한다. 동시에 수많은 공장출신 유기묘들도 길거리에 돌아다닌다. 불쌍하게도 많은 수가 죽음을 당하지만 그 중 살아남는 친구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 우리가 기억하는 코리안 쇼트헤어의 모습은 이런 유기묘와 교배되며 점점 바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최초의 기록인 조선 숙종 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현재 우리나라 고양이의 특질이 버려진 소위 '품종묘'에게서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는 이야기이다.

유기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채 몇 세대가 지나면 이런 느낌의 코숏을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아메리칸 쇼트헤어라는 품종이 있다. 사실 브리티시 쇼트헤어 중 일부가 미국에 오는 배를 타고 건너왔다는 게 정설인데, 이 또한 마찬가지 측면에서 '품종화'되었다. 건드린 건 거의 없고 앞으로의 보존을 위해서. 사실 브리티시 쇼트헤어도, 노르웨이 숲, 메인 쿤, 심지어 유전병으로 매우 유명한 스코티시 폴드(이 품종의 유전병에 대한 내용은 많이 전문적이고 무거울 것 같아 다음 기회에 다시 이야기 하겠다. 스포일러를 좀 하자면 이 또한 공장 문제이다) 같은 품종들도 자연발생종이며, 이 형태나 특성을 유지시키기 위한 품종 관리가 있을 뿐이다. 아메리칸 쇼트헤어가 품종묘가 된 이유와 다를 게 없다.

아메리칸 쇼트헤어(로 추정되는) 고양이. 사실 미국 길고양이가 그 기원이다.
우리가 고양이를 아끼는 사람으로서 경계해야할 것은 품종고양이의 거래에 관한 게 아니라, 위에 말한 '고양이공장'출신 '펫샵'에서의 거래에 관한 것이다. 이는 동물권 문제보다 더 큰 윤리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어서, 우리가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근절해야 되는 대상이다.
어떤 사안에 대한 입장을 취한다는 것은 그 사안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사회적 동의를 얻는다. 맹목적인 태도는 분열 만을 불러일으킴을 우리는 몇몇 사례를 통해 잘 알고 있다.
붙임.
이 글의 취지는 품종고양이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함이지 '품종고양이를 구매하는 문화를 장려'한다거나 '길고양이 외에는 고양이를 인정 못한다'는 의견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고양이가 어떤 고양이든 내가 챙겨 같이 정든 내 고양이는 예쁘다. 판단은 각자의 몫일 뿐이지만 그 판단에 오류가 끼면 안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