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지 가늠도 안되는 옛날부터 고양이는 ‘영물’로 불려왔다. 익숙함이 주는 무신경 탓인지 이 단어가 별 감흥이 없이 들리게 된지도 이미 오래지만 내포된 뜻은 상당하다. 신령스러운 물건이나 짐승 이라는 국어 사전의 풀이대로, 사람의 지혜로 가늠을 할 수 없는 무언가 ‘능력’이 있어 보이는 탓이 크겠다. 그렇게 불리우게 된 이유는 여럿이 있겠지만, 당장 떠오르는 건 눈, 사람과는 매우 다른 모양과,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이나 사람과 함께하는 다른 동물들, 개도 있겠지만 가축까지 확장해봐도 그들의 눈에서 절대 볼 수 없는 색이 나오기도 한다.

개, 소, 닭, 돼지 등 다른 가축이나 반려동물에게서 보기 힘든 색깔이다.
그러나 단지 색깔과 모양 때문에 ‘영물’로 분류되었을까. 사실 우리가 고양이에게서 신기해 하는 한가지가 있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데 뭔가를 열심히 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얀 천장, 벽지밖에 없는 벽 등 사람이 봤을 때는(물론 고양이가 봐도) 단조롭기 그지없는 ‘배경’을 마치 뭔가 볼 게 있는 것 처럼 뚫어져라 보는 건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영물’ 얘기가 나왔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귀신을 본다는 미신적 이야기들도 많이 나오니.
그러나 귀신을 고양이가 본다고 하면, 고양이를 이용한 점집같은 사업(…)도 나올법 한데 그런 건 찾아보기 힘들다.
귀신을 본다는 그 분들은, 고양이도 귀신을 본다고 인정하는 분위기는 아닌가보다.
그렇다면 실제 고양이들은 왜 그럴까?
많은 집사 분들의 지식대로, 고양이는 태생적으로 근시이다. 일반적으로 대략 6미터 내의 동체를 포함한 사물을 정확하게 포착해낼 수 있다고 하니 고양이에게는 근시가 표준인 셈이다. 인간은 정상적인 시력을 갖췄을 경우 50~60미터 내의 사물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인식한다. 고양이는 볼 수 없는 거리에 있는 가게의 간판을 보고 찾아가는 게 인간이니,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다만 고양이는 이런 결점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장점이 있는데, 우리보다 6배의 빛 감지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 그 중 하나이다. 고양이를 야행성이라고 분류하기도 하지만, 실제 고양이는 해질 때와 해 뜰때 즈음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인다. 그 얘기는 빛이 있긴 하지만 세진 않을 때, 다시 말해 사냥감들의 시력이 자신보다 약해질 때를 노린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우리보다 넓은 시야를 갖고 있다는 것.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작은 곤충이나 먼지같은 존재의 폭 넓은 움직임도 고양이는 포착해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무언가를 집요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이 문제에 대한 해답 중 하나이다.
그러나 먼지를 고양이가 그렇게 뚫어져라 볼리는 없고, 언뜻 사람이 봤을 때는 안 보이는 곤충을 쳐다보고 있을 경우가 더 많을텐데, 진짜 눈 씻고 찾아봐도 곤충이 없을 때도 고양이는 무언가를 주시하고 있을 때가 있다.
이에 대한 또 하나의 해답은 청각이다.
우리는 못 느끼지만 벽과 천장에는 수많은 배선들이 있다. 특히 아파트 같은 경우에는 천장에 많을 것이고, 주택의 경우에는 벽에 많을텐데, 이 배선에서 내는 소리들은 고양이에겐 흥미 내지는 두려움이 될 수가 있다. 사람이야 지구상에서 가장 스마트한 존재이니 배선의 소리가 ‘아 온수구나’, ‘아, 난방이구나’라고 이해하지만 고양이는 매번 ‘저건 뭐야?’라는 식으로 반응한다고 이해하면 쉽다. 게다가 고양이의 청각은 인간에 비해 매우 발달해 있어서 소리의 발원지를 기가 막히게 추적해낸다. 뭔가 바스락 거리면 사람은 예를 들어 ‘내 왼쪽에서 대충 바스락거렸구나’ 라고 지나가지만 고양이는 그걸 거의 핀포인트로 잡아내서 추적한다. 사냥 본능에 따라.

이런 곳에서 나는 모든 소리가 그들에겐 마냥 신기
다 알겠어, 근데 왜 그렇게 오래 봐?
우리또한 490만년 동안 수렵과 채집을 해왔던 종족이지만, 1만년 남짓의 농경생활에 무뎌진 것인지, 진화론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사냥을 어떻게 해야한다는 원초적 기억이 별로 없다. 파리도 전기로 잡으니 앞으로 1만년 지나면 뭘 잡기 위해 아무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고양이는 아무리 반려동물이 된지 꽤 됐다고 하더라도 그 기억이 온 몸에 남아있다. 그리고 사냥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실제로 멜리사 R. 샤이언-노월트라는 동물행동학자의 연구 결과, 반려묘는 집에서 창밖을 보는 행위 하나만으로 평균 5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대단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좀 불쌍하기도 하니, 고양이만 집에 뒀을 때는 창밖을 잘 보도록 꼭! 조치를 취해두자.

이렇게 하루 평균 5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근데, 벽이 아니고 나를 그렇게 쳐다봐.
야생에서의 동물들은 대부분 눈을 쳐다보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주시한다는 것은 보통 사냥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꺼리는 것인데, 고양이도 사실 다르지 않다. 그나마 개의 경우는 인간과 함께 이런 저런 일을 함께 해왔고, 애초에 늑대라는 조상이 무리생활을 했으니 쳐다보는 것에 의미를 담는 데에 익숙한 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인간의 유대감이 고양이-인간의 유대감에 비해 월등하다고 보긴 힘들다. 실제 내가 고양이를 사랑하는 만큼 고양이도 나한테 기대는 느낌을 받을텐데, 이는 결코 개의 그것에 비해 적지 않다는 것을 집사들은 다 안다.

개와 표현방식이 다를 뿐, 신뢰와 사랑의 크기는 같다.
이런 강력한 유대감이 있을 경우, 고양이도 사람을 뚫어져라 볼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인간의 눈을 바라보는 동물은 오직 ‘반려동물’ 뿐이다. 사람의 시선을 감지하고 따라가는 행위는 그 어떤 동물들도 하지 못한다.
고양이는 절대 두려워하거나 싫은 사람을 쳐다보지 않는다. (경계의 의미로 주시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건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자칫하면 도망갈 수 있는 자세를 갖추며 쳐다보니) 그렇기 때문에 고양이가 당신을 쳐다볼 때는 사랑과 신뢰가 곁들여져 있다는 것을 기억해두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