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서문.

인류는 대략 50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출현하면서 발생했다는 것이 상식처럼 여겨진다. 물론 현세대의 인류와 뇌의 크기부터 직립의 정도 등 모든 것이 달랐을테지만 그래도 두 발로 걸으려 하고 도구도 쓰고 하는 몇몇가지 공통점을 토대로 학자들이 그렇게 판단했고 그에 대한 동의가 이루어졌으니 우리도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이다.(잘 모르는 것을 설명하려니 과부하가 걸린다) 농경사회가 시작된지 얼마나 지났는지 정확히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1만년 전이라는 설이 유력한데, 지구의 빙하기가 끝나고 온도가 올라가며 큰 동물이 사라지게 되고, 작은 동물은 사냥하기 힘들고 잡아도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인류의 원죄, ’정해진 노동’인 농경이 시작되었다고들 한다.

평화롭지만 엄청난 작업이 들어간다. Photo by Barbary Dondrup

 

진화의 속도란…

자, 기초적인 계산을 해보자. 무려 1만년이나 농경을 해왔음에도 우리는 아직 배고픔과 활동량의 적절한 밸런스를 찾지 못해 운동도 하고 그런다. 남는 시간에 건강해지려고 운동하는 동물은 없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인간의 식습관이나 행동이 많이 ‘자연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이 결론에는 여러가지 논리적 비약과 간과한 참고사항등이 무수히 많겠지만 490만년 이상의 수렵채집시기에 익은 유전자가 1만년 정도로는 충분히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도 큰 지분을 가졌음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렇듯 부자연스러운 삼시세끼의 농경사회 문화를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우리 고양이에게 강요하는 것도 인간이다. 이는 과연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무시해도 될만큼 안전한 선택일까?

 

고양이라는 동물의 식습관.

고양이는 보통 하루에 10-30회의 사냥을 해서 3-10번 정도 성공한다고 한다. 작은 들쥐나 새 정도를 잡으면 순간 배는 부를지언정 그걸로는 하루를 버티기에는 당연히 부족하다. 작은 들쥐라 해도 5마리 정도를 먹는다고 가정하면 덩치에 비해 많이 먹는 셈이지만 최대 30회의 사냥을 하는데에 들어가는 열량을 생각해보면 수긍이 가는 정도의 양이다. 잠을 많이 자는 이유도 사냥을 대비하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생존전략인 셈이다.

두 마리가 친해보여도 같이 먹이는 건 금물. 신입사원이 팀장과 1:1로 먹는 것보다 훨씬 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Photo By Florian Bollman

 

그렇다면 적정량은?

집에 사는 고양이가 하루 열량을 채우기 위해서는 한 끼에 야생고양이가 한번 먹는 열량 수준의 1.5~5배를 먹게 되는데, 이는 굉장한 과식이 된다. 양에 비해 높은 열량은 포만감을 줄이기 때문에 자주 음식을 찾게 되고, 이는 당연히 고양이에게 좋지 않다.

고열량이 문제라면 저열량 음식이라는 대안이 있긴 하지만 고양이의 위는 대략 탁구공이나 골프공 사이즈 정도임을 감안할 때 하루 두세끼로 감당할 수 없는 양을 급여해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는 곧 식후 구토 습관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보통 식후에 구토를 하는 고양이들의 집사분들은 고양이의 속이 좋지 않거나 병이 있을 수도 있다고 걱정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과식이다. 사료회사에서 정한 하루 용량보다 많이 주지 않는 집사의 경우에 내 고양이가 구토가 잦다고 하면 소화기계통의 질병을 의심하기 전에 끼니를 자주 나누어 급여하는 것을 먼저 고려해봐야 한다.

이렇게 주면 무지개다리 급행열차. Photo By Jake Parkinson

시중에 나와있는 고양이의 밥그릇을 보면 보통 국그릇만한 사이즈를 기본으로 하고, 냥체공학이랍시고 높이를 살짝 높힌 제품 또한 나와있다. 그 냥체공학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동물은 먹는 자세와 소화가 크게 관련이 없다. 오히려 국그릇만한 사이즈에서 오는 문제가 더 크다. 작은 접시를 여러개 준비해두고 하루 5~7회 정도 소분하여 급여하는 것이 훨씬 나은 솔루션이다.

 

올바르게 밥 주기.

몇 년 전 미국의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에 흥미로운 제품이 등장한 적이 있다. 구멍이 크게 난 작은 플라스틱 구조물에 사료를 넣고, 그 구조물을 역시 구멍이 숭숭 난 쥐 인형에 넣어 고양이에게 던져주는 제품인데, 냥체공학(정확히는 고양이 행동학)에 부합하는 제품이라고 볼 수 있다. 얼마나 성과가 좋은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존에 있으니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주문하도록 하자. (No 광고)

NoBowl이라는 제품. 아래 모듈이 쥐 인형으로 들어가며, 저 스푼이 1회 정량(!)이라고 한다. Photo Credit: Dr. Liz Bales

사냥의 본능을 자극하며 적절한 양을 여러번에 거쳐 급여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게 어렵다면 자동 급식기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행동풍부화는 해결이 되지 않지만 비만과 구토는 어느정도 예방할 수 있다.

 

역지사지.

반려동물로서의 고양이는 근본적으로 두 가지 힘든 점이 있는데 하나는 인간본위적 접근 방식에서 기인하는 부류의 힘든 점, 또 하나는 대표 반려동물인 개와 같은 식의 접근 방식에서 기인하는 부류의 힘든 점이다. 현대 집고양이의 총체적 난국에 가까운 식습관은 이 두 가지 힘든 점의 교집합에 해당한다.

고양이에게는 사료의 성분이니 그 성분의 원료는 무엇이니를 고민하는 것보다 적절한 끼니 제공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전체적인 건강에 더 이로울 수 있다는 점을 잘 기억했으면 좋겠다.